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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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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주의

    공포에 뒤덮인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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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헤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5,223회   작성일Date 19-07-03 15:08

    본문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 선동 프로파간다를 논할때 늘 언급되는 괴벨스가 한말입니다. 나치의 정치가, 그는 히틀러를 총통으로 만들고 독일을 광기로 물들게 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괴벨스는 그러한 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오직 국내에서만 유명한 말로, 출처가 어떻게 되는 지 알 수 없는 말이죠.
     
     그런데도 이 어구를 언급한 이유는, 선동과 그를 정정하기위한 행위에 대해 이보다 적절하게 설명하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입니다.
     
     대중은 잘못된 사실일지라도 믿기 시작하면, 그것을 정정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일종의 흐름이 되어 온 국토를 뒤덮는 데, 그 대표적인 예가 괴벨스가 살아있던 제3제국 시절이었습니다. 그 광신적인 믿음은 홀로코스트를 불러왔고, 전쟁의 불길을 전 세계에 번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는 딱히 나치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사이래 수 많은 선동가들이 있었고, 광신적인 믿음에 인간성, 도덕성을 내팽개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정의라고 믿었습니다. 십자군 원정이 그러했고, 아랍권의 테러리스트들이 그러했으며, 나치를 따르던 독일인들이 그러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다양한 부류의 혐오세력들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종교와 질병에서의 안전을 근거로 자신들이 정의라 주장하고, 자신과 다른 정치 세력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과 폭력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합니다.
     
     우리 당사자들에 대한 혐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대개 공공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혐오를 정당화 합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들으려하지않으며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믿는 것을 부정하기위해서는 그들을 믿게 만든 한 마디의 말보다 수 십배의 증거와 문서가 필요로합니다. 그들은 객관적인 증거로 믿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그럴듯하게 말하는 누군가의 주장에 귀기울입니다.
     
     진실을 확인하려는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공공히 자신이 믿던것을 계속해 주장할 뿐입니다. 때로는 과격하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당사자들이 상처입고 두려워하며 아파하고 죽어갑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수용되어집니다. 소수의 당사자들중에서도 또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들은 위험하지 않으며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냅니다. 짓밟히고 무시당해도, 현실이 이상을 따라오지 못해 더럽고 추한 모습들에 좌절해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약합니다. 증거를 찾고, 논리를 반박하고, 현실을 보여주어도, 대중은 쉽게 변하지않습니다. 대중만이 아니라 언론도, 미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긴 시간 뿌리박혀내려온 편견과 언론을 통해보도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대중들에게 공포를 지워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당사자들의 위험은 공포이지만, 당사자들의 현실과 괴로움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견고하게 쌓여올려진 편견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게르만 민족의 분노를 유대인들에게 풀어놓았던 나치와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대중을 뭉치게 하기위해 내부의, 혹은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그들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는 행위.
     
     그렇다고 당사자 활동가들의 노력이 헛되기만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인 모습의 언론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고,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 문구와 마찬가지로 거짓을 겉어내는 노력은 거짓을 덮어씌우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개개인이 진실을 알려하지 않는다면, 대중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다면, 우리 당사자의 현실과 진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할 미래는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위험이라는 이름으로 뒤덮여진 당사자는 진실이 아닙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격리되어야할 당사자는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병을 앓고 있는 동일한 사람이고, 조금 다른 감각을 가진 이웃입니다.

     그게 현실이고, 그게 진실입니다.
     
     하지만 대중이 믿고 있는 '상식'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고고하게 자신의 고개를 꺽으려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야합니다.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게 깨어있어야만 합니다. 맹목적인 광신이 어떠한 참사를 불러왔는 지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렇지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제 3제국 시절의 홀로코스트를 재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끔찍한 역사를 되풀이하게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이미 되풀이하고 있다고 봐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만큼 편견에 휘둘리고, 혐오세력에 공격당하며, 병원에 수용됩니다. 병에 힘들어하고 사회에는 복귀할수 조차 없습니다. 대다수의 당사자가 사회의 변두리에 머물러있습니다. 취약계층으로 내몰려있습니다.
     
     거짓된 공포에 물들어 언제까지 그 행위를 반복해야만 할까요.
     
     이제는 그 거짓된 공포를 거두고 현실의 당사자들을 바라보아야만 할때입니다. 당신의 이웃을, 사회의 일원을, 같은 인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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