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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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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하지 못한 조현병 혐오, 뜨겁지 못한 당사자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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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은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8,337회   작성일Date 19-05-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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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하지 못한 조현병 혐오, 뜨겁지 못한 당사자 '팩트'>

     

     2009년은 정신장애인 모 씨가 '정신장애인의 인권 수준은 박해에 해당한다'며 난민으로서 '인정'된 해였다. 당시 캐나다에서는 엄청난 이슈였다. 그러나 한국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런데 올해는 정반대다. 2019년의 봄은 지난한 해였다, 특히 정신장애인에게 있어서 말이다. 여기저기서 조현병에 대한, 정신장애에 대한 보도가 속출했다.

     '안인득' 살인사건을 필두로 수없이 많은 "정신장애 범죄 기사"가 보도되고, 공영방송 KBS에서는 「제보자들-조현병 쇼크, 그들은 왜 살인자가 되었나」라는 제목의 혐오 조장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KBS에는 항의성명서를 냈다. 오마이뉴스의 한 기사에서는 조현증에 대한 낙인을 다루기도 했다(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m.aspx?CNTN_CD=A0002539577&PAGE_CD=N0002&CMPT_CD=M0112#cb). 언뜻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들에 대응하는 기사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대응일 뿐 '진압'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장애인/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서와 이에 기반한 수많은 '악플'들이 쏟아졌다.
     

     그들 중 여기 파도손의 페이스북에 게재(혹은 '박제')된 악플이 하나 있다. 다른 악플들의 혐오 양상을 모조리 담아놓은, 압축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해당 댓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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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댓글은 혐오로서 분석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전시물이다. 너무 '끔찍'한 전시여도 어쩔 수 없다.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이 악플은 조현병을 위시한 정신장애인 혐오에 대하여 아주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간의 인내를 가지고 이 혐오를 직시해, 분석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 '심도있는 혐오'의 댓글은 "일반인의 살인범죄와 조현병 환자의 살인범죄는 전혀 다르다"로 주장을 시작한다. 그 근거로 "일반인이 저지르는 살인은 대상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조현병 환자가 살인을 저지를 시 그것은 무차별적이고 예기치 못할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의도된 살인이 고의 없는 살인보다 더 나은 것처럼 여기는 발상이 황당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를 뒷받침한 근거 자체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여성 살인의 전조(前兆) '스토킹'>에서 제시한, '조현병'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여성 대상 범죄', '남성의 스토킹'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과 명백히 대치된다. 안인득이 지속적으로 스토킹을 했으나 경찰이 제지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여러 자료들과 함께 '팩트'로서 실려있다.(http://mn.kbs.co.kr/mobile/news/view.do?fbclid=IwAR3nyA0A3g-XSXEL2THgoJPZ1hBhYnMgnKBh6ztSfyLYHhNEwEE0TASGnd4&ncd=4206330#kbsnews) 그러나 혐오자의 머릿속에서 '팩트'는 중요치 않다. 어쨌든 조현병 환자는 기괴하고 '이상'해야 하며,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병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독하게 황당무계한 예시였지만, 굳이 정정해주자면, 악플러가 말하듯이 조두순이 정신장애인인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악플러는 조현병 환자가 "관리"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 를관리를 부수는 것이 바로 "인권팔이들"의 무책임한 짓거리라고 한다. 일반인의 범죄율은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의 10배가 더 되며, 전문가들도 오히려 정신장애인이 '피해자'의 위치에 해당하기 쉽다고 발언하고 있는 판국이지만, 그러한 '팩트'는 혐오를 다시 한번 빗겨간다.
     

    악플러는 또한 당사자의 '병식 없음'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공포를 조장한다. 바로 그 "인권팔이"로서 지적하건대, 우리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조현병 환자가 자신이 치료받을 의료 환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지만 정신과는 갈 수 없는 주변인의 이야기를 미디어에서 혹은 현실에서 보아서 알 것이다. 조현병 환자라고 다를 것이 없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 병원에 대해 오히려 더 심층적인 공포감과 불안감이 생겼을지 모른다. 약물의 용도와 부작용에 대한 설명 없이 다량을 투여하는 부실한 외래 서비스, 정신병동 강제입원과 결박, 폐쇄독방, 가족의 학대, 그리고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말이다.
     

     2009년의 캐나다 난민 신청 이슈를 상기해본다. 왜 이러한 이슈들은 '뜨거워지지' 못하는가? 악플러는 "인권을 잘 챙겨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 안전망 속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악플러 자신의 권리는 보장되기를 바란다. '조현병 환자'들은 사람이 아닌가?
     

     이 악플러는 '얼마나 줄' 것도 없는, '감옥에 갈' 일도 없는, 절대다수의 사회적 약자, 즉 정신장애인들의 참혹하고 경이로운 현실을 모르지만, 어쨌든 '혐오'는 굴러간다. 혐오와 멸시, 그리고 낙인이란 기실 '팩트'를 바탕으로 굴러가는 법이 없다. 언제나 몇 가지의 트릭과 클리셰를 수반하여 물살을 탄다. 쿨한 판단자의 위치에 서려 하지만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악플러들, 기자 및 방송 관계자들, 그리고 어쩌면 이 온 나라 대중들의 치졸함은 왜 이토록 뜨거운데,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논의에는 이리도 차가운가. 

    이 시점, 사회는 혐오에 냉정해야 하고 당사자 논의에 뜨거워야 한다. 
     

    한 사람의 조현병 악플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알몸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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