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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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하고 반성해야한다고 배웠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가정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며 예절이라고 여겼지만, 막상 당사자 계에 들어와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사자들은 우리를 이렇게 부릅니다.
'생존자'라고,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으로 부터?
병원에서, 사회에서, 가족 내에서,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편견과 폭력적 치료와 고립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어디를 어떻게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가해자는 없습니다. 책임지고 사과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럼 가해자는 어디로 갔을 까요?
가해자는 의사가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정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들 모두가 될 수도 있겠죠.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대상은 달라질 수 있지만, 모두 다 당사자들을 힘들게 만드는 이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의사는 강압적 치료를 고수하고, 부모는 제구실 못한다고 구박하거나 외면하고 언제까지나 자신이 돌봐야 할 아이로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정부는 보호해야할 국민을 방치하고 전문가라는 의사의 의견만을 들어 인권을 박탈해버립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횡포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생각도 없이, 그들이 전문가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엄연한 인권유린을 눈감아버립니다.
이렇게 분명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사과하려들지 않습니다.
의사는 배운 대로, 그리고 제대로 된 의료조치를 취했음에도 원망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며 입원판단을 사법부에 떠넘기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은 상실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낮 병원을 국가에서 지원하게하고, 병원사례관리로 관제탑 역할을 맞으려하며, 강제입원의 문턱을 낮추어 수익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그 어디에도 과거의 반성은 없죠.
그럼 가족은 어떤가요?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당사자들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가족들에게 당사자는 짐 덩어리에 스트레스 해소도구입니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강제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습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안하니까. 하지만 개정된 법안으로 그렇게 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어떤 가족은 당사자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를 당사자 몰래 수탈하기도합니다. 또 몇 몇 가족들은 의사처럼 강제입원의 문턱을 낮추어달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당사자들을 돌볼 사람들이 자신임으로 자신의 수익을 보장해달라고 외치는데, 그들의 주장의 우선순위가 되어야할 당사자의 목소리가 뒤로 밀려있습니다.
또 당사자가 자신의 아이이기에 다른 당사자들까지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걸 다른 당사자에게도 적용, 자신의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없는 아이로 격하시키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성인인 당사자임에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부,
그들은 보다 많은 비 당사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려 당사자 강제관리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당사자들을 희생양으로 선택한 겁니다. 그 이전에 실패한 법이나 제도들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이.
가해자는 도대체 어디에 간 것일까요?
어느 누구도 잘 못이 없고, 책임이 없다면, 우리 당사자들은 무엇으로 부터 살아남았을 까요?
우린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혐오를 생산해낸 사람일 수도 있고, 직접적인 가해를 가한 세 부류의 일원 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인지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그 첫발로서 계속되는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행동해야합니다. 입으로만 하겠다하지 말고 정신장애인권을 높일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희생된 모든 당사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만 합니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가족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족은 당사자의 독립을 돕고 스트레스 해소 창고로 사용하지 말아야하며, 응급 입원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만 합니다. 의사의 모든 말에 긍정하기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우선하고, 약 복용이외의 회복프로그램도 함께 병행하도록 찾아보아야합니다.
가족이라면, 당사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병에 대해 공부하기를 권해드립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당사자들에게 원수 같은 존재지만, 찾아갈 수밖에 없고 만날 수밖에 없는 의사 분들.
여태까지의 치료방식이 실패했다는 것을 이제라도 인정하고 패러다임시프트를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구금과 강압적 치료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기도 합니다.
정신장애당사자의 인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개선해나가야만 합니다. 어디에도 없는 가해자가 아니라, 실존하는 가해자로서 그래야만 합니다. 여기 실존하는 '생존자', 피해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가해자들을.
'생존자'라고,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으로 부터?
병원에서, 사회에서, 가족 내에서,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편견과 폭력적 치료와 고립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어디를 어떻게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가해자는 없습니다. 책임지고 사과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럼 가해자는 어디로 갔을 까요?
가해자는 의사가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정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들 모두가 될 수도 있겠죠.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대상은 달라질 수 있지만, 모두 다 당사자들을 힘들게 만드는 이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의사는 강압적 치료를 고수하고, 부모는 제구실 못한다고 구박하거나 외면하고 언제까지나 자신이 돌봐야 할 아이로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정부는 보호해야할 국민을 방치하고 전문가라는 의사의 의견만을 들어 인권을 박탈해버립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횡포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생각도 없이, 그들이 전문가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엄연한 인권유린을 눈감아버립니다.
이렇게 분명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사과하려들지 않습니다.
의사는 배운 대로, 그리고 제대로 된 의료조치를 취했음에도 원망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며 입원판단을 사법부에 떠넘기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은 상실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낮 병원을 국가에서 지원하게하고, 병원사례관리로 관제탑 역할을 맞으려하며, 강제입원의 문턱을 낮추어 수익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그 어디에도 과거의 반성은 없죠.
그럼 가족은 어떤가요?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당사자들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가족들에게 당사자는 짐 덩어리에 스트레스 해소도구입니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강제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습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안하니까. 하지만 개정된 법안으로 그렇게 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어떤 가족은 당사자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를 당사자 몰래 수탈하기도합니다. 또 몇 몇 가족들은 의사처럼 강제입원의 문턱을 낮추어달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당사자들을 돌볼 사람들이 자신임으로 자신의 수익을 보장해달라고 외치는데, 그들의 주장의 우선순위가 되어야할 당사자의 목소리가 뒤로 밀려있습니다.
또 당사자가 자신의 아이이기에 다른 당사자들까지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걸 다른 당사자에게도 적용, 자신의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없는 아이로 격하시키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성인인 당사자임에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부,
그들은 보다 많은 비 당사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려 당사자 강제관리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당사자들을 희생양으로 선택한 겁니다. 그 이전에 실패한 법이나 제도들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이.
가해자는 도대체 어디에 간 것일까요?
어느 누구도 잘 못이 없고, 책임이 없다면, 우리 당사자들은 무엇으로 부터 살아남았을 까요?
우린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혐오를 생산해낸 사람일 수도 있고, 직접적인 가해를 가한 세 부류의 일원 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인지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그 첫발로서 계속되는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행동해야합니다. 입으로만 하겠다하지 말고 정신장애인권을 높일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희생된 모든 당사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만 합니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가족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족은 당사자의 독립을 돕고 스트레스 해소 창고로 사용하지 말아야하며, 응급 입원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만 합니다. 의사의 모든 말에 긍정하기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우선하고, 약 복용이외의 회복프로그램도 함께 병행하도록 찾아보아야합니다.
가족이라면, 당사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병에 대해 공부하기를 권해드립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당사자들에게 원수 같은 존재지만, 찾아갈 수밖에 없고 만날 수밖에 없는 의사 분들.
여태까지의 치료방식이 실패했다는 것을 이제라도 인정하고 패러다임시프트를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구금과 강압적 치료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기도 합니다.
정신장애당사자의 인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개선해나가야만 합니다. 어디에도 없는 가해자가 아니라, 실존하는 가해자로서 그래야만 합니다. 여기 실존하는 '생존자', 피해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가해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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