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를 메모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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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를 메모할 권리가 없다>
정신장애 '사례관리'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사례(case)를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이 때 사례란 관리하는 대상자, 즉 정신장애인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어떤 사물이나 어떤 현상에 대한 연구라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 그 어떤 상업적 서비스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을 물건 마냥 '사례'라고 표현하지 않지만, 정신의료라는 특수한 권위는 장애인을 도구화할 수 있다. 그러한 방식은 그들의 권위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다. 왜 의료는 서비스가 아니라 '가르침'이고 의사는 '선생님'인가? 무엇이 그들을 존경하게 하는가?
'임세원법'이라는 말도 참 희한하다. 우리는 고인을 근거 없이 모독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사고방식 아래 자라왔다. 맞는 이야기다. 혹시라도 "정신장애인을 강제로 입원시킬 방법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에 매한가지로 도구화되는 워딩 '임세원법'은, '모 살인 피해자 법'이라는 길다란 어구를 만들기 귀찮아서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라며 봐줄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람의 죽음을 권위자의 실추로 곡해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것이다. 다분히 악의적인 모독이며, 더군다나 고인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그조차도 보장되지 않는다. 세상천지에 치료 받고 싶지 않다는 감기를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 결박하고 때로는 독방에 가둬놓는 곳은 없다. 설령 그 감기가 '정신장애'의 명칭으로 아주 많이 오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정신장애가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 그럼 이미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암세포와 같을 것이다. 그러면 가둬놓을 명분이 생긴다. 정신장애인이 '예비 범죄자'라면 말이다.
이쯤에서 굳이 통계를 확인하자. 정신장애인 자살률은 그 나머지, '정신이 건강하신 분들'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 정신장애인 범죄율은 그 나머지보다 월등히 낮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동성애자가 쉬이 자기 지향성을 드러내지 못하듯, 아무도 자신이 정신장애인이라고 커밍아웃하지 않는다. 만일 정신장애가 있다고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그 순간 직업을 유지하고 친구를 사귀기는커녕 지역사회에서 왕따나 안 당하면 다행인 것이다. 어쩌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이사 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농담 같다고? 우리에게는 현실이다. 현실에서 정신장애인은 예비 범죄자가 아니다. 만만한 놀림거리, 실직자 혹은 기피대상일 따름이다.
자, 그럼 강제입원도 틀린 소리고, 모 교수의 피해 사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의도도 잘못되었고, 정신장애인은 명백히 사례 따위로 표현될 물건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을 명백히 이해해야 초등교육에서, 또는 사회화 과정에서 배우는 민주사회의 평등이란 질서를 깨우칠 수 있다. 후자를 아는데 전자를 모른다니 어불성설이다. 만일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은 평등을 모르고 있다는 소리다.
"정신장애인은 사례로서 관리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필요없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병원에 찾아가겠다. 그러나 나를 멸시하고 우리를 짓밟는 의료는 필요 없다. 당신은 우리를 '기록'하고 싶은가? 그러나 당신은 우리를 메모할 수조차 없다. 그것은 잘못되어 있으니까. 당신에게는 우리를 메모할 권리가 없다.
정신장애 '사례관리'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사례(case)를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이 때 사례란 관리하는 대상자, 즉 정신장애인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어떤 사물이나 어떤 현상에 대한 연구라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 그 어떤 상업적 서비스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을 물건 마냥 '사례'라고 표현하지 않지만, 정신의료라는 특수한 권위는 장애인을 도구화할 수 있다. 그러한 방식은 그들의 권위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다. 왜 의료는 서비스가 아니라 '가르침'이고 의사는 '선생님'인가? 무엇이 그들을 존경하게 하는가?
'임세원법'이라는 말도 참 희한하다. 우리는 고인을 근거 없이 모독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사고방식 아래 자라왔다. 맞는 이야기다. 혹시라도 "정신장애인을 강제로 입원시킬 방법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에 매한가지로 도구화되는 워딩 '임세원법'은, '모 살인 피해자 법'이라는 길다란 어구를 만들기 귀찮아서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라며 봐줄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람의 죽음을 권위자의 실추로 곡해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것이다. 다분히 악의적인 모독이며, 더군다나 고인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그조차도 보장되지 않는다. 세상천지에 치료 받고 싶지 않다는 감기를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 결박하고 때로는 독방에 가둬놓는 곳은 없다. 설령 그 감기가 '정신장애'의 명칭으로 아주 많이 오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정신장애가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 그럼 이미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암세포와 같을 것이다. 그러면 가둬놓을 명분이 생긴다. 정신장애인이 '예비 범죄자'라면 말이다.
이쯤에서 굳이 통계를 확인하자. 정신장애인 자살률은 그 나머지, '정신이 건강하신 분들'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 정신장애인 범죄율은 그 나머지보다 월등히 낮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동성애자가 쉬이 자기 지향성을 드러내지 못하듯, 아무도 자신이 정신장애인이라고 커밍아웃하지 않는다. 만일 정신장애가 있다고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그 순간 직업을 유지하고 친구를 사귀기는커녕 지역사회에서 왕따나 안 당하면 다행인 것이다. 어쩌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이사 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농담 같다고? 우리에게는 현실이다. 현실에서 정신장애인은 예비 범죄자가 아니다. 만만한 놀림거리, 실직자 혹은 기피대상일 따름이다.
자, 그럼 강제입원도 틀린 소리고, 모 교수의 피해 사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의도도 잘못되었고, 정신장애인은 명백히 사례 따위로 표현될 물건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을 명백히 이해해야 초등교육에서, 또는 사회화 과정에서 배우는 민주사회의 평등이란 질서를 깨우칠 수 있다. 후자를 아는데 전자를 모른다니 어불성설이다. 만일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은 평등을 모르고 있다는 소리다.
"정신장애인은 사례로서 관리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필요없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병원에 찾아가겠다. 그러나 나를 멸시하고 우리를 짓밟는 의료는 필요 없다. 당신은 우리를 '기록'하고 싶은가? 그러나 당신은 우리를 메모할 수조차 없다. 그것은 잘못되어 있으니까. 당신에게는 우리를 메모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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