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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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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파견일지(5)- 안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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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헤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065회   작성일Date 23-07-28 13:40

    본문

    나의 파견일지(5)

    - 안개 속에서.

     

     

    목요일이 되었다. 나는 이전 날 들었던 대로 파도손으로 출근한다. 여유로운 출근 속에 던져진 나는 정작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걸 느끼기엔 약의 여파가 여전하다.

     

    마모된 감정과 마모된 생각.

     

    여유는 없지만 그걸 자각하기에는 약이 주는 무게가 더 무겁다. 나른하고 무겁고 속은 더부룩하며 멍하다. 생각이란 회의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조금씩 돌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이기가 어렵다.

     

    다행히 발음이 어려울 정도도 아니고 잠을 못 이길 정도가 아니다. 파도손의 2층 교육실에 덩그러니 있을 때는 그랬다.

     

    그래도 무언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파도손 공용 노트북을 하나 꺼내 들고 파견일지를 끄적인다. 그러고나니 점점 생각이 활발해진다. 약이 짓누르고있던 뇌가 가벼워진다.

     

    그러니 눈치가 보이고, 그러니 이 넓은 2층 교육실을 혼자쓰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에어컨을 틀어도 될까? 혼자서 쓰기에는 전기세가.’

    에어컨을 껐다가 도무지 더위를 참을 수 없어 틀었다. 여전히 눈치가 보인다.

    당사자주의 게시판에 올리는 글 말고는 할 것도 없기에, 절차 보조 사람들은 바쁘기에 나는 홀로 그 텅 빈 곳에 있었다.

     

    아무런 걱정이 없을 수 없는 상황이다.

     

    되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고 되돌아가지 못한다면 나는 어느 곳에 갈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오늘은 출근으로 인정되는 걸까.

    사무실의 사회복지사는 결근 처리가 될 것이라 해서 심장이 덜컥했다.

     

    나는 급여가 필요하다. 누구나가 그렇지만 나는 더욱 간절히 필요로 한다. 하루의 결근은 주휴수당이 없어져 이틀의 급여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급여의 문제와 지속할 일자리에 대한 걱정.

     

    안개 속에 파묻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 든다.

     

    습하고 불투명하고 서늘하며 때로는 공포스런 안개 한가운데.

    유령선이라도 불쑥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바다의 안개 속 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멈춰있거나 좌초되어버릴지도 모르지.

     

    나는 그렇게 불안한 상황 속에 하루를 꼬박 보냈다.

     

    다행히 예외적 상황으로 출근 처리가 되었고 파견지에 관한 이야기는 금요일로 미루어졌다. 한숨은 돌렸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내일은 해답이 나와 줄까.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새로운 파견 처도 구하기 어렵고 다른 파견 처에 넣기도 쉽지 않으며 되돌아가는 것도 힘들어 보이니까.

    아니, 돌아가는 것은 어떻게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든다.

     

    하지만 그 불투명함은 희석되지 않고 금요일의 오픈 다이얼 로그 시간을 시간을 맞이했다.

     

    수업, 인턴 비전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도, 개념도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온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자조 모임이 이어지며 한숨을 돌린다.

     

    산책하고 카페에서 노곤함을 푼다.

    조금은 흔들리고 불안했던 정신이 여유를 되찾는다.

     

    오늘의 기록자는 나이지만 그것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계획하고 회의했던 대로 산책이 끝나고 3층 자조 모임 실에서 컬러링 북 시간을 보내고 기록을 한다.

    그 모든 걸 끝내고 나서야 사무국장님께서 일단 월요일도 파도손에 출근하라 하신다.

    괜찮은 건지에 대해 다시 불안이 치밀어 오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무국장님도 피곤하고 힘겨워 보이기에 뭐라 더 묻기도 어렵다.

     

    그저 조용하게 퇴근을 할 뿐.

     

    무력함과 막막함에 난 또 고장 난 나침반이 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파도손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이 불안함이 빨리 끝나리라 믿을 수밖에.

     

    나는 그렇게 하루와 한 주를 닫는다.

     

    주말의 평안함을 보내고 안개가 걷히기를.

    나는 불안함 속에 내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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