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로그인 회원가입
  • 커뮤니티
  • 당사자주의
  • 커뮤니티

    당사자주의

    On Our Own 소감문 (7)-하00 동료상담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파도손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473회   작성일Date 20-09-29 11:39

    본문

    On Our Own
    -JUDI CHAMBERLIN-


    이 책은 1977년에 발간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시절의 방식은 비과학적 시스템 일부를 제외하곤 지금의 동료지원과 지원주택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것은 사람들이 미칠 때라는 주제로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1970년대  “조현증”과 “사회질병적 인격장애” 그리고 다른 많은 정신의학적 용어들이 의미하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간쓰레기”라고 표현합니다. 정신의학적 레이블링은 본질적으로 낙인을 찍는 과정입니다.
    1970년대는 여성의 인권이 상당히 무시되고 있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 여성들은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고정관념에 순응하지 않으면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을 아프다고 낙인찍었습니다. 치료에 이의가 있는 “미친”사람들은 무시되거나 질병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하고 관습을 좇지 않는 극적인 삶의 선택은 빈번하게 정신병/질환의 증거로 인용됐습니다.
    또한 세뇌당하고 있다고 의사들에게 푸념하는 환자들은 번번히 망상적이라고 불렸습니다. 정신의학적 현실 그들이 아프고 정신의학적 치료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순순히 따라가는 사람들만이 회복의 길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대의 정신의학적 진단과 병원 입원은 의학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권력에 관한 것입니다. 치료적인 커뮤니티는 최악의 상태에서 조직화된 세뇌로 변질됐고 권력은 여전히 관리자의 손에 있었습니다. 당시의 심리치료는 그들이 아프고, 미쳤고, 환경에 적응을 못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억압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정신병원 등으로 직원으로 할당되었는데 그것은 적당한 처벌이 되기에 충분히 불쾌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병원 입원이나 치료에 대한 것은 환자들의 동의를 얻었는지 아닌지를 논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은 무시당하고 억압당했습니다.
    사람들이 감정적 엉킴에 붙잡힐 때 모든 사람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정상적이라거나 아픈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의학적 진단으로 위장한 도덕적 판단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조현병의 증상은 우리의 환경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지각이 다시금 반복적으로 공격당하고 무시되고 부정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양한 언론 매체들은 정신질환자들을 시선을 끌기 위한 안 좋은 사건들을 극적으로 끌어 올리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정신장애인 또는 정신질환자”를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정서적 지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주위의 있는 사람들은 떠나갑니다. 가족은 가장 심한 피해자이자 가장 심한 가해자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동료지원이나 지원주택, 정신 재활 센터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동료지원과 지원주택 등은 과거 미국 1970년도에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클럽하우스의 개념과 같은 장소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곳은 [엘리자베스 스톤 하우스]와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입니다. [엘리자베스 스톤 하우스]와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는 완전히 정신의학적 원조 밖에 서 만들어진 대안입니다.
    [스톤 하우스]는 “여성과 광기”라고 불리는 컨퍼런스를 통해 1974년에 시작되었는데 이곳은 정신병원과 전통적인 중간주택 양자 모두에 대안을 제공했습니다. 그 집의 첫 두 층은 위기상황에 있는 여성들 그렇지 않으면 정신병원에 들어가야만 하는 여성들이 최대로 2주일 머무를 수 있는 보호센터이고 위의 두 층은 “ 중간주택 프로그램의 제한이 없는 장기 주거인 치료적 집단을 머무르게 했습니다. [스톤 하우스]는 주간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외부인을 제외하고, 치료적 집단이나 직원이 없습니다. [스톤 하우스]가 비공식의 카운슬링을 제공하고 여성들을 그들의 정서적, 의료적, 그리고 사법적인 어려움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에 위탁하는 반면에, 주요한 역점은 긍정적이고 자양분을 공급하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곳은 각각의 거주자들의 필요에 대한 동등한 책임을 지고 하우스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결정에서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주었습니다.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는 그곳의 서비스를 극심한 위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목표로 삼고 있었고, 그것의 방법은 사람들이 이 감정에 실린 기간을 그들의 삶에서 극적인 변화를 만드는 기회로 사용하도록 돕는 것이었기에 의존관계를 만들기를 원치 않아서 최대 2주간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초점을 감금이나 약물 대신에 집중적 감정지원에 둔, 병원 아닌 상황을 제공했고 정신병원과는 극적으로 달랐습니다. 거리두기와 ”객관성“을 제공하는 대신에 직원들은 거주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했습니다.[벤쿠버 정서 응급센터]에는 딱 네 가지 규칙만이 있었습니다.
    1. 약물 금지(불법 마약에만 적용하다가 처방된 정신과 약도 포함되었다)
    2. 술 금지
    3. 언어나 신체적 폭력 금지
    4. 직원들과 거주자등 간의 섹스 금지(거주자에게 강요를 금지하기 위해서)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에선 삶의 위기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간적 지원 환경을 제공하려 시도했습니다. 거주자들은 자유롭게 회의에 전체적이나 부분적으로 참석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참석을 거부한다면 그 집의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거주자에 대한 문제가 일어나면 그 문제들은 하우스 미팅에서 다뤄졌고 거주자들과 직원들 모두는 서로를 비판할 자유가 있었고 그들의 비판에 대해 열려있도록 장려되었습니다. 직원들은 단호하게 그들 자신의 삶이 완벽한 정돈 상태에 있는 냉담한 권위자로서 군림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벤쿠버 정서 응급센터]는 더 이상의 후원을 받지 못해 1976년 3월에 문을 닫았지만 26개월의 기간 동안 약 650명의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였습니다.
    1970년대에 이루어진 모든 서비스들은 지금에서야 한국에 조금씩 적용되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욱더 활발해지고 확장되는 동료지원과 클럽하우스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더욱더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