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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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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파견 일지(8) -쌓여가는 시간, 흘려버린 시간, 그리고 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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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헤타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933회   작성일Date 23-08-18 16:35

    본문

    나의 파견 일지(8)

    -쌓여가는 시간, 흘려버린 시간, 그리고 나의 시간.

     

    화원에 온 지 3일째.

     

    며칠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편안한 동료들이 둘이나 있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적응을 빨리하는 편이어서?

     

    아니, 적응이랄 것도 없다.

     

    그저 이렇게 되었다.’가 내 삶의 태도이기에 낯선 것은 거의 없고, 있어도 금세 그렇군하고 받아들이니까.

     

    나는 이 병을 앓던 시간 동안 그렇게 되어왔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려고.

     

    최악의 상황도 덤덤히 받아들이도록, 무던히 바라볼 수 있는 나를 만들었다.

    현상을 현상으로.

    사건을 사건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난 내 증상과 함께 살아가고, 현실의 세계에 머물 수 있었다. 첫날과 달리 시간이 흐릿하게 보인다.

    지나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볼 때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식물의 이름을 외우기엔 너무 덥고 물을 주기엔 다육식물들은 물을 별로 필요치 않다. 하엽을 조금 떼주고 약간의 교육받고, 무료하고 정적인 식물들의 시간속에 던져진다. 그리고 사장님에 관한 이야기에 주말 근무가 걱정된다.

     

    깐깐하고 고지식한 70대의 할아버지.

     

    건설현장일을 현역으로 하신다면 성격도 거치실 것이다. 그러니가 이렇게 느슨해서는 안되는 걸까.

     

    이렇게 헤이해도 되는 걸까.

     

    무료하지만 확실히 쌓여가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글을 작성하기도 하고, 이전의 교육들을 되새기기도 한다. 알아야 할 것은 많고, 배워나가고 익혀야 할 것들은 많지만, 할 일이 많은 것도, 급할 것도,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식물들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것들의 시간은 우리와 달리 느긋이 흘러간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

    느긋하고 온화해지는 것도 같지만, 늘어지고 나태해지는 것도 같다.

     

    며칠을 보내며 자동으로 조절되는 온도 습도 환기에 잘 정돈된 시스템 속 식물들과 같은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고 만다.

     

    느릿하고 정적이지만 멈춰있지 않고, 그 자리에 물건처럼 서 있지만 살아 숨 쉬는, 따스한 햇볕을 머금은 다육이들의 시선이, 시간의 개념이, 내게 휘몰아쳐 온다.

     

    진짜 난 이대로 괜찮을까.

     

    아직도 다육이들의 이름은 두어 개만 알고 구분할 수 있고 알고 있는 업무도 적다. 시간은 분명히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은 주말에만 받을 수 있다. 다섯 시 무렵 긴긴 나의 늘어진 시간이 끊어진다.

     

    그래도 내 시간이 그리 빨라지지는 않는다.

     

    버스를 타지않고 전철역을 걷는다.

    20분이 넘는 걸음의 시간.

     

    건강과 교통비 절약,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배차 간격으로 버스보다 빨리도착할 수 있는 시간의 절약.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갔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속 거북이처럼, 내 걸음은 멈추지 않고 나의 시간을 걸어나간다.

     

    차곡히 쌓여가는 시간은 나를 다육이의 세상 속으로 데려가 줄까.

    평화로워 보이고 아무 걱정이 없을 것만 같은, 느긋한 그 세상이 내게도 찾아올까.

     

    나는 여전히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스트레스투성이인 인간의 세상에 있다.

     

    그저 인간의 세상이라기엔 어폐가 있으려나.

     

    관절은 삐격 삐걱, 하루일 과도 버거운 체력, 잦은 잔병치레, 수많은 자극에 휘둘리는, 약하고 결여된 소통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만성적인 정신피로.

     

    또 그렇게 쌓이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해소하지 못하면 찾아오는 증상을 관리도 해야 한다. 또 그럼으로 발생하는 일상의 빈틈과 그걸 버겁게 맞추는 나 자신에 대한 비관도 막아야한다.

     

    경제적으로도 압박을 느끼는 상황.

     

    조금만 앗하면 나는 망가진 시계가 되겠지.

    하루 하루 싸워나가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방심하면,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고 현실 따윈 모르는 괴물이 되겠지.

     

    두렵고 짜증나고 버겁다.

     

    매일이 수많은 상념과 스트레스로 짓눌려있다. 이런 내가 일상적인, 대다수의 인간세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슬아슬 밑바닥에 걸쳐있을테다.

     

    다육이가 바라보는 세계는 나오는 아득히도 멀리에 있다. 그래도 묵묵히 걷다보면 그 조용하고 느릿하지만 평안한 세상에 닿지는 않을까.

    일이 아니라 더위와 긴 출 퇴근 시간으로 몸이 넝마가된다.

     

    덥고 고되다. 피로하고 어지럽다.

     

    집에 몸을 뉘어 에어컨의 찬 바람으로 몸을 식힌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 할 수 있는 것도 하고픈 것도 없다.

     

    씻고 저녁도 먹어야 하지만, 그냥 이대로 잠을 자고픈 유혹이 강하기도하다. 몸이 축 늘어지고 시간도 축 늘어진다.

     

    그리고 있자면 다육이가 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다육이의 세계로 들어가고팟지, 다육이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식물이 되려는 뇌를 깨우며 몸을 씻고 식사를 한다.

     

    하루를, 더위에 익어가는 오늘들을 넘기고, 파도손의 오늘도 넘어가며 주말이, 처음으로 사장님을 맞이하는 날로 향해간다. 이번 주말은 피곤하고 힘들고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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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님의 댓글

    Star 작성일 Date

    또 안녕하세요...

    제 속에는요, '내가 먼저 살아야 돼'라는 괴물이 있어요

    그 괴물 덕분에 찌질하게나마 (...)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내 자신을 너무 몰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한 상처를 입히고 말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질투심이 너무 많은 게 불만이었는데
    근데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 자체는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분들이 맞는 것 같애요. ..제주도 해녀들 처럼 '살암시민 살아진다' 도 괜찮고, 약간 힘들더라도 '언젠가 끝날 거다' 라는 믿음도 괜찮아요. 가끔가다 종교와 자신이 맞는다 느끼면 조금씩 시도해 봐도 누가 뭐라 안하구요. ...

    ..저도 짧은 구석이 있어서 더 길게 말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날 괴롭히는 사람들을 싫어하느라 시간을 버리는 것보단 그 반대로 전력질주하는 편이 낫습니다.

    쾌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