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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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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주의

    나의 파견일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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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헤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63회   작성일Date 23-07-14 16:23

    본문

    나의 파견일지.

    -동료 지원가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며.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파도손의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다. 조현정동장애라는 병명을 가지고 16년 정도의 삶을 살아왔고, 여전히 약을 먹고, 여전히 증상이 실존한다. 환청과 환영은 약으로 어느정도 다스려지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고는 한다.

     

    거기에 쇠약해진 육체는 다양한 병원에 들려야 유지된다. 그것이 스트레스나 나의 증상의 일부일수도 있지만, 일단은 신체적인 고통 또한 같이하고 있다. 다른 당사자도 그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없지만 많은 당사자는 (이하 당사자) 당뇨를 비롯한 수많은 합병증을 가진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하는 것은 정신병이라 일컬어지는 나의 특질적인 것이 아니다.

     

    일이고, 경제적인 무언가이며, 자신에 대한 불신뢰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일할권리로 이어진다.

     

    나는, 그리고 당사자는 일할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파도손은 그러한 요구에 맞추어 사업을 진행했고,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이번은 그 사업에 들어가기전의 이런 저런 나의 이야기다.

     

    실업급여가 끊어진지 몇 달이 지났다. 경제적 사정이 여유롭지않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홀로 지탱하는 삶은 버겁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나의 경제관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당사자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돈과 생활에 쫓기는 삶은 여유와 자존감을 잃어가게한다. 무능력하고 무력해지는 것을 학습하게한다.

     

    비 당사자를 포함해 모두가 그럴테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이 더욱 크게 다가오고는 한다.

     

    우리는 일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모두가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시선 속에 던져져있다. 사회는 우리가 일을 못하는 것을 당연시여기고, 가족은 답답하고 힘들지만 포기해버린다.

     

    우릴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당사자에게까지 번져버린다.

     

    스스로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불신한다. 고장나거나 불량품인 기계가 된다. 거기에는 일할 권리도, 능력도 없다. 대다수가 그러했고, 나 또한 그러했다.

    조금은 말을 잘하고, 조금은 글을 잘쓰고, 조금은 잡지식이 많을 뿐.

     

    나는 사회의 한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어려운 한명의 당사자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하지만 나 또한 가난에 휘둘리고, 나 또한 증상에 짓눌린다.

     

    오히려 잘 태가 나지않아 이해받기 어려운면도 있다.

     

    태가나면 나는대로, 태가나지않으면 않는대로, 사회는 일자리를 빼앗는다. 효율과 능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무런 장애가 없는 비 당사자와 싸워나가야만한다.

     

    그것은 두렵고 불합리한 일이다.

     

    언젠가는 그들과 동등한 능력을 보여줄수도 있고, 더 뛰어넘을 수도 있겠지만, 시작 조차 할 수 없는 지금에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뿐이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삶이 유지될 수 없는 당사자들.

     

    그 어떤 누구도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않고, 그것은 수많은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포기하고 외면하고 순응할뿐.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포기하고 비 당사자들의 세계는 그것을 당연시여긴다.

     

    당사자들은, 나는, 무기력과 무능함을 학습받는다. 그리고 그 좌절의 밑바닥에서 아득하게도 높은 사회의 벽을 마주보며 살아간다.

     

    장애인은 무섭고 무능력하여 일하지 못하고, 아이같이 관리와 교육이 필요하며, 그 어떠한 말과 판단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린 위험한 불발탄이며, 우린 잠재적인 범죄자다.

    우린 천진하고 보호 받아야 할 아이이며, 일방적인 도움과 일방적인 편견을 겸허히 받아들여야할 환자다.

     

    나는 그러한 사회의 시선이 싫다. 하지만 일할 능력이 없다. 나에겐 커리어가 없고, 나에게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작업능률의 손실이 있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육체또한 쇠약하다.

     

    몸이 건강할 시절에는 어떻게든 버티며 건설현장의 일용노무직을 하던 기억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럴수도 없다.

     

    그나마 그 일용노무직에 적응하는 것도 나에게는 지난한 일이었고, 몇 번의 급성기를 거치고 쉼이 필요했지만, 운이 좋게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고, 운이 좋게도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나는 노래를 좋아했고, 그것이 나를 버티게해주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주었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지인들은 반복되는 고통속에서도 이해하고 받아주며 위로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주려는 노력도 개의치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해하고 증상들에 가슴아파만 할뿐이다.

     

    나의 이야기도, 나의 병도 이해하지 못했다. 숨이 막혔고, 그래서 나는 홀로이기를 바랐다. 홀로 살기를 꿈꾸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 많은 회복수단에도 숨이 꺼질 것 같았으니까.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수 많은 욕을 먹고, 수 많은 몰 이해를 겪고, 수 많은 순간에 당사자임을 들켜 일하지 못하고 비난받을까, 병원에 강제입원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파도손의 일자리는 나의 편안한 고향과 같았다. 당사자임이 흠이 아니었고, 당사자가 불편함이 아니었고, 당사자가 가지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지 않고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려 노력했다.

     

    적어도 지난 3년간 파도손에서 진행한 동료상담가 양성사업은 그러했다. 그 이전부터 이어진 절차보조팀도 그러했고, 나는 지난 2년간 동료상담가로서 살았다. 그동안에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였고, 필요한 존재였으며,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 사업은 폐지되었다. 기대하며 기다리던 시간동안 실업급여는 종료되었고, 그 사이 보았던 장애인 관련일자리의 면접은 번번이 떨어져야만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무능력한 사람이었으며, 아무것도 아닌 정신병자임을 깨달아야만했다.

     

    나에게 사회는 녹록치않은 사막이다. 그렇기에 파도손이 시작한 서울형 뉴딜일자리 사업은 오아시스와 같았다. 내가 숨쉴 수 있는 낙원과 같았다.

     

    당당히 급여를 받고 당당히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 속에서도 살아갈 동력원이다.

     

    하지만 불안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의 사업은 전년도까지 진행되었던 사업과 본질적으로 다르고 그에 불안함을 느꼈다.

     

    우린 파견을 나가야한다. 당사자를 이해하는 당사자들의 단체인 파도손이 아닌 지역의 사업장으로 나가 그곳의 일을 해야한다. 동료상담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지만 그와 상관없는 일들을 할수도 있고, 전보다 많은 회계업무와 전산업무를 행해야할 수도 있다. 거기에는 이해도 없고, 거기에는 우리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며, 동료도 없다.

     

    비 당사자와 어울려 살아가야만한다. 그것은 나를 매우 두렵게했으나, 동시에 해나가야만한다고 생각했다.

     

    일하지 않으면 나의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으니까.

     

    홀로인 삶을, 나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삶을 실현할 수 없다. 물론 실업급여가 끊긴 순간에는 내가 가진 것을 팔아도 충당하지 못해 도움을 받아야했지만,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긴급 생계급여를 받고, 복지관의 식비지원을 받았지만, 기초생활 수급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 혼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싶다. 누군가가 하는 것을 당연히 경험하고 싶다.

     

    그런마음으로 교육기간을 보내고, 그런마음으로 버티어냈다. 일자가 가까워질수록 두려워지고, 일자가 가까워질수록 전년의 사업과 다른 점이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해야만했다. 하지 않으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을 다른 파도손 일원들에게 전파하고 싶지도 않았다.

     

    할 수 있다는 묘한 자기 확신도 있었다. 전년도 그 전전년도, 나는 힘겨웠지만 버티어냈고, 지금과는 다르지만 건설현장 일용 노무직으로도 살아갔으니까. 정신장애 당사자로서도 16년간 살아남았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면 믿고 싶었다가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가는 것도, 이번의 사업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도 할 수 없으니까. 사업의 종료후에는 무슨 일을 할지도 고민할 수도 없으니까.

     

    앞에 놓인 일을 나는 버티고, 해나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기간이 정해진 사업에 불안을 느끼지만, 그것은 내가 지금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눈 앞의 것을 해나가고 나의 능력을 더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하자.

     

    그렇게 나는 파견의 날을 맞이한다. 여전한 불안과 여전한 불확실함은 가슴 어느 한구석에 우겨넣고 괜찮은 듯, 자신있다는 듯.

     

    파견의 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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