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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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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_ beminor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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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0,305회   작성일Date 19-05-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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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글기사: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3375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_  (정신장애와인권파도손대표 이정하)

    진주 방화 살인 사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외침
     정신병원이라는 수용소에 갇혀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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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병’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다. 진주 방화 살인 사건 이후 방송과 미디어가 앞다투어 조현병을 범죄와 살인의 화신으로 형상화하면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스트레스는 심화되고 있다. 이제 조현병이 있는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자, 같이 살기 싫은 자, 살인자, 잠재적 범죄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국 언론은 ‘조현병 포비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혐오와 차별이라는 이중구조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최근 뉴스를 보던 당사자는 실신하였고, 특히나 일반 사람들보다 예민하고 취약한 조현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나 환청으로 고생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댓글을 읽는 동안, 실제 조현병을 진단명으로 가지고 있는 나 역시 자살 충동이 심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혐오가 깊어질수록 당사자들의 건강은 악화되고 피해는 커지지만, 언론은 현재의 보도가 얼마나 국민적 혐오와 증오의 사냥터로 당사자들을 내모는지 고려하지 않는다.

     

    - 병식이 없어 정신병원에 안 간 게 아니다

     

    2016년 1년간 정신장애인 1,601명이 사망하였다(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정신건강동향 vol.9). 하루에 4명꼴로 사망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렇게 숱하게 죽어가는 정신장애인의 죽음은 언론 그 어디에도 조명되지 않는다.

     

    실제 정신장애 당사자로 살면서, 주변에서 당사자들의 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총칼 전쟁이라면 낫겠다. 이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고, 정신장애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냥터에서 쫓기는 사냥감이다. 이곳에서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가지만 이러한 당사자의 삶은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아니, 못들은 척 한다. 우리의 문제는 그러한 문제다. 의도적인 무시와 배제. 그렇게 유령 취급당하다가 강력 사건만 터지면 사냥터에서 끌려와 마녀사냥을 당한다.

     

    정신장애인은 범죄를 저지를 확률보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정신질환 자체도 어떤 원인의 결과들이다. 정신질환 발생의 이면에는 사회적 폭력과 환경적 트라우마,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가난할수록, 환경이 나쁠수록 정신질환의 유병률은 높아진다. 진주 사건의 피의자 또한 가난한 사람이었고, 사건이 발생한 곳은 가난한 이들이 모여사는 주공아파트였다.

     

    그러나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 이러한 배경은 모두 삭제되고 오직 정신질환만 덩그러니 남는다. 진주 방화 살인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진주 사건은 “환자가 병식이 없어서 병원에 안가려고 했다”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강제입원이 해결책이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지금 마치 ‘사회로부터 조현병 환자를 격리하고 제거하라’는 보이지 않는 명령이 떨어진 듯 국회는 분주하다.

     

    지난해 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전문의 고 임세원 교수가 피살되었을 때 국회에서 ‘임세원법’이라는 명칭으로 33개의 법안이 발의된 것처럼, 진주 사건도 비슷한 양상으로 통제·관리·격리 프레임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떤 기시감이 든다.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도 ‘엽기적인 사건’이 시작이었다.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지면서 한 개인의 인신을 구속하고, 심지어는 사회로부터 삭제하는 것이 법의 이름으로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정신보건법으로 과거엔 전화 한 통이면 가족구성원 중 누구라도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 너머로 가두어 버릴 수 있었다. 아니,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은 핑계다. 강제입원 이면에는 다양하고도 다층적인 이유와 구조들이 있다.

     

    나 역시 수용소(우리사회가 ‘정신병원’이라 부르는 바로 그곳)에 강제입원되었다. 6곳의 정신병원을 경험하였는데, 하나 같이 사람이 있을 만하지 않았고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만행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내가 만약 남에게 그런 짓을 했다면 나는 감옥에 갔을 것이다.
     
    정신병원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러한 병원이 아니며, 그곳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제 발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병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병식이 있어도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정신장애인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학대와 고문이 일어난다. 그러나 언론에는 실제 치료 현장이 어떤지, 그곳에서 정신장애인은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조현병 환자들은 병이 있다는 이유로 중범죄자가 받을 법한 형벌을 받아왔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병원에 갇힌 채 숨만 쉬는 삶도 삶이고 생명인가. 지역사회에 방치된 채 방구석에서 죽어가는 것도 삶인가. 과거 언론은 조현병 환자를 범죄자 취급하더니 이제는 살인자 취급한다. 조현병 환자를 이렇게 마녀사냥하니 당사자들은 더더욱 커밍아웃하기 힘들고, 그럴수록 피해는 전국민의 것이 된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정신과 수진 환자수는 1년에 632만명에 달한다. 치매환자를 제외한 숫자니 정신과 환자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내 가족·이웃·친구·동료의 문제다.

    - 문제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경찰과 지역사회 복지 부족’

     

    생각해보자. 한 여성이 아래층에 사는 남성에게서 지속적으로 스토킹과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 사람이 정신질환이 있던 없던 그 자체로 문제이고, 이는 강력사건의 예고편일 수 있다. 그러나 진주 사건에서 경찰은 피해여성이 숱하게 구조요청을 해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이는 피의자의 질환 문제가 아니라 경찰의 직무유기가 일으킨 예견된 참상인 것이다.

     

    스토킹으로 성폭력과 죽임당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데 스토킹하는 남자들이 모두 조현병인가? 정작 아파트 주민들도 조현병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고, 유족들 또한 조현병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정확하게 제시하며 경찰의 사과를 요구했다.

     

    나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위원이다.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비자의입원 즉, 현행법상 강제입원되는 사람들의 입원 적정성을 심사하는 기구다.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정신건강복지법)’로 전면 개정되면서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졌다고 하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강제입원되고 있으며, 진주 사건 피의자가 저지른 다수의 폭력 사건보다 훨씬 경미한 사건을 저지른 이들도 강제입원 되고 있다. 행정입원에 의한 강제입원도 종종 있으며, 지난해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는 응급입원 메뉴얼을 경찰서에 배포했지만 이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즉, 이번 사건은 언론과 정신과 의사들이 주장하듯 강제입원이 어려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문제는 경찰에 있고, 지역사회에 있는 것이다.

     

    정신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어 정신건강복지법이 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신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복지서비스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진 만큼 지역 정신건강서비스의 인프라나 위기 중재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국가의 방치로 당사자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사각지대에서 위기는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당사자 집단에서는 ‘진주 참사 방지법’이라는 제목으로 위기대응구축을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상태다.

     

    현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지금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사건은 반복될 것이며 그때마다 조현병 당사자들은 집단 증오에 노출되어 숨도 쉬기 어려운 하루를 버텨나가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다. 당사자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안다. 법은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올바르게 개정되어야 한다.

     

    - 정신장애인이 내지르는 두려움의 비명, 들리지 않는가.

     

    나는 조현병환자다. 환청이 “사람을 해쳐라. 해치지 않으면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지시하고 그로 인해 굉장한 고통을 겪어도 결코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하는 괴로움을 사람들은 모른다. 대다수의 당사자들이 그렇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중에도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당사자냐 비당사자냐를 떠나서, 어떤 사람이라도 생각이나 마음으로 분노가 일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도 똑같다. 사람을 죽이거나, 찌를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불명이 아닌 이상 질환이 아무리 심해도 의식은 살아 있고, 의사소통 어려움이 있다 해도 진짜 남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정신장애의 정도가 악화되거나, 많이 아플 때 급성기가 온다. 급성기가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주로 스트레스와 관련 있다. 급성기 때 일부 공격적으로 되고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급성기의 일시적 현상이다. 그러니깐 급성기다. 그러나 병이 악화할 때 남을 해칠 확률보다 자기 자신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러한 행동을 정신장애인이 자기조절력이 심각하게 약화하여 내지르는 두려움으로 이해할 시민의식이 우리 사회엔 진정 없는 걸까.

     

    오늘도 “조현병 환자를 사형시켜라”, “정신병자들을 격리시켜라”, “조현병 환자들을 모두 강제입원시켜라” 등의 댓글을 목도하며, 폭력과 혐오 의식으로 무장한 채 모니터 뒤에 숨은 차별의 광란을 본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괴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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