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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질환을 갖고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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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059회   작성일Date 23-03-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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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하게 미움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혼자 다니는 아이들이 있죠. 어릴 때 저는 그런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어릴 때 혼자 놀이터에서 놀이기구 위에 올라가 보았던 푸른 하늘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순간을 만끽했던 기억입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지내는 데 익숙했습니다. 무리지어 다니거나 3명 이상의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면 마음이 언제나 불편했어요. 타인과 사교활동을 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인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홀로 행동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게 더 편했어요. 공동체를 이루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목말라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우울증을 오래 앓으면서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 시기도 있었습니다. 대학생때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강의실을 견디기조차 힘들 때가 많았어요. 그럴 때는 학생들이 가지 않는 학교 뒷편에 가서 책을 읽거나 호수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런 성격은 대학을 졸업하고 긴 취업 준비 시기를 겪으면서 더욱 심화되었죠.

    나중에는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힘들어졌습니다. 몇 달간 집 밖을 나가지 않다가 편의점에 갔는데, 간단한 인사와 계산을 해달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과의 만남이 그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시간을 보내며 읽을 책이 항상 있었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건 괴로움을 동반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 거의 없는 업무만 골라서 일했으니까요. 일하면서 누구도 제게 말을 걸지 않는 게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받고 나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었어요. 큰 결심을 한 건 아닙니다.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취약점 덕분에 다른 사람과의 유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이전까지는 세상에 살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홀로 꿋꿋이 살아가는 게 올바른 일이고 어른스러운 거라고 믿었습니다. 우울증이 있다 해도 남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고 오로지 나의 의지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여겼죠. 그런 마음을 가졌으니 우울증이 심각해져서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찾아가도 오래 지나지 않아 치료를 관두곤 했습니다. 


    조현병적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 그런 마음에 균열이 갔습니다. 부모님과 의사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자 처음에는 기분이 몹시 나빴어요. 제 정신 건강 상태에 따라 제 결정권의 일부가 타인에게 주어지고,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제대로 생활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답답하면서 제 능력이 이것밖에 되질 않나 절망감도 들었습니다.

    초반에는 이런 불쾌한 기분의 원인을 정신질환 탓으로 돌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저 자신과 제 정신질환만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타인을 향해, 바깥을 향해 마음의 방향이 바뀌었어요.방향이 바뀌면서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저를 도와주고 힘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강을 많이 잃은 지금도 그렇지만 이전부터 타인에게 많은 것들을 빚지며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동시에 어쩌면 내가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게 헛된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서서히 제 평소 마음가짐과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되었어요. 타인에게 더 쉽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서서 타인을 돕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예전보다 조금 더 타인에게 친절하자고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이전보다 훨씬 덜 힘들었습니다.변화를 통해 타인과 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취약점들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공동체에 속해 살아가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취약점들을 내보일 때도 있고, 어울리기 위해 서로의 취약점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도우며 유대를 쌓는 관계가 가능했습니다. 혼자였을 때는 필요하지 않았고 필요 없었던 과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혼자서도 잘 지내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라고들 말하곤 합니다. 약하기 때문에 무리지어 다닌다고들 하지요.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취약점을 보이고 타인의 취약점을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도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정신질환을 약점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인해 생기는 취약점들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타인이 듣기에는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조현정동장애를 가지게 되고 나서 제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제 정신건강은 좋아지기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 때에도 좌절해서 혼자있기를 택하기보다는 타인과 도움을 나누고 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신질환자이던 아니던 우리는 모두 하나씩 취약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작권자 오마이뉴스(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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