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로그인 회원가입
  • 정신건강정보
  • 정신장애인권리포트
  • 정신건강정보

    정신장애인권리포트

    “나를 살린 건 ‘놀메 하라우’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이자 철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파도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600회   작성일Date 22-03-04 16:33

    본문

    [376호 사람과 상황] 30년 가까이 조울증 두 자녀와 함께한 김정희 교육가

    5edf3b686691ebbc0b78111fc187669f_1646377347_2413.jpg
     

    1979년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12월~1985년 12월까지 호주에서 유학했다. 유학 중 유아교육 관련 자격증을 받고 Child Care Center에서 소수민족을 위한 플레이그룹을 운영하는 동시에 Petersham College에서 유아교육과 번역강사 일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랑의교회 유아부 창설(1986)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약 6년 동안 교육전도사로 사역했다. 1986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아뜰&아뜰리쉬 원장으로서 32년을 교육사업에 매진한 교육가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0〉에 따르면,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4%이다. 18세 이상 국민 4명 중 1명은 평생에 한 번 이상 불면증, 공황장애, 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경험한다는 말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사회적 편견과 무지 때문에 질환을 겪으면서도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정신질환에 관한 인식 개선과 정확한 정보의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비롯해, 당사자들 이야기를 담은 다채로운 서적과 방송 등이 나오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질환의 치료와 회복을 도모하는 이런 시도 중 하나인 유튜브 ‘조우네 마음약국’은 각각 28년, 20년째 조울증을 겪으며 살아온, 형 ‘조우’와 동생 ‘그레이’ 가족이 만들어가는 콘텐츠다.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전하는 고통과 회복의 이야기를 듣고자 약 1만 명이 ‘조우네 마음약국’을 구독한다. 4년 전 시작된 이 방송은 독서 모임, 일대일 상담, 예배 모임 등으로 확산했다.


    방송에서 ‘조우 엄마’로 종종 출연하는 김정희 교육가는 일대일 상담은 물론 독서 모임과 예배 모임에 힘을 쏟고 있다. 조울증 자녀를 둔 엄마로서, 30년 넘게 교육사업에 종사한 교육가로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깊이 공감해주는 위로를 전한다.


    - 조울증 두 자녀와 함께한 가족의 이야기가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는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4년 전쯤 큰애가 시작한 유튜브 ‘조우네 마음약국’이 구독자가 1만 명이 넘고, 호응을 얻으면서 커뮤니티들이 생겨났어요. 조울증(양극성장애), 우울증 등을 겪는 정신적·정서적 약자들과 그 가족들이 영상을 보면서 큰 위로와 도움을 받았나 봐요. 카카오톡 1천 500명이 넘는 이들과의 일대일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400여 명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도 있어요. 함께 예배드리는 ‘아둘람 모임’도 생겨났죠. 이런 모임들에 중국, 미국 등에 있는 회복된 환자들이나 전문 의료인 등이 합류해 도와주고 있어요.


    - ‘정신적·정서적 약자’라고 표현하셨는데요. 흔히 말하는 ‘정신질환’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개념이 혼동되기도 합니다.


    저는 ‘정신적·정서적 약자’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사용해요. 정신적 약자는 정신증(psychosis)이 있는 환자로 현실 판단에는 문제가 있고 망상이나 환각 증상이 있어요. 조현병, 조울증 등이 여기에 포함되지요. 정서적 약자는 신경증(neurosis)이 있는 환자로 현실 판단에는 문제가 없지만, 성격장애, 수면장애 등으로 나타나죠. 흔히 우리가 정신질환이라고 할 때 크게 정신증과 신경증 모두 포함하죠. 요즘에는 경계성도 많은 것 같고, 복합적 증상도 많은 것 같아요. 뇌와 관련한 병이라서 중독 증상이 따라오기도 하고요. 통전적 치료가 절실하죠.


    - 30년 가까이 조울증인 두 자녀를 돌보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질환의 치료에 의료인이 아닌 분들이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의료적 관점에서 보면 약물 치료가 필수조건이죠. 증상 완화를 위해서는 확실히 약을 먹어야 해요. 그러나 병원 밖에서 중요한 건 공감적 대화예요. 정서적인 지지나 대화를 강조하는 사람 중에 대니얼 피셔라는 사람이 유명해요. 그는 한때 생화학 박사로서 정신과 약을 만들었고, 20대 중반에는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조현병을 진단받아요. 식음을 전폐한 그를 살린 사람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고 동료지원가였어요. ‘동료지원가’는 정신질환을 앓다가 회복된 경험을 토대로 환자들을 돕는 교육·훈련을 받은 사람인데요. 대니얼 피셔가 힘겨워할 때 이 사람들이 말없이 다가와 필요를 묻고 채워준 일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거예요. 나중에 그가 퇴원 후 정신과 의사가 돼 자기 경험을 살려 ‘정서적 심폐소생술’(e-CPR)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요. 1992년에는 정신장애인 회복을 돕는 동료지원 단체 전미역량강화센터(the National Empowerment Center, NEC)를 설립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당사자와 그 가족을 위한 공감적 대화 훈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요. 2019년 기준으로 미국에는 동료지원가 3만 명이 활동하고 있어요. 그의 개념과 활동을 녹여낸 책이 《희망의 심장박동》(한울아카데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출판되었어요. 그는 환자의 수준을 받아주는 공감적 대화가 그들을 살리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5edf3b686691ebbc0b78111fc187669f_1646377373_5335.jpg
     

    ⓒ복음과상황 정민호

    - 지금은 참고할 만한 책이나 정보가 많은데요. 자녀의 질환을 처음 인지했을 때만 해도 좋은 책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28년 전에 큰애가 아팠을 때 읽을 만한 책이 딱 한 권이 있었는데,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하나의학사)였어요. 정신과 교수이면서 임상심리학 박사인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의 투병기죠. 약을 거부하고 증상이 악화할 때의 경험들도 세밀하게 담겨있어요. 요즘은 당사자들 수기가 책으로 많이 나오는데, 당시는 거의 없었거든요. 또 김진 박사의 《정신병인가 귀신들림인가?》(생명의말씀사)라는 책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정신·정서와 관련한 질병에 관해서 영적인 차원으로만 해석하는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참 많더라고요. 누구 기도가 용하더라, 하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니 너무 안타깝죠.


    - 그동안 정말 많은 책을 보셨을 텐데, 요즘 특별히 주목해서 보는 책이 있나요?


    당사자 수필들이 많이 나오는데 언제부턴가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너무 슬프면 읽기가 어려워요.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로 사람들을 크게 위로했다가도 정작 그 자신의 삶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예도 있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세세한 매뉴얼이 담긴 책이나 구체적인 극복 사례들을 주로 보고 있어요. 《베델의 집 렛츠! 당사자연구》(EM커뮤니티)는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모여 사는 일본 공동체 이야기인데, 해산물 상품을 만들어 파는 모습이나 망상이나 환청 경험을 자유롭게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유의 작은 공동체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조울증은 한 번 겪고 나면 거센 쓰나미가 지나간 듯 상처와 잔재가 많이 남는 질병이지만, 그 고통을 지렛대 삼아 성장하는 밝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듯해요.


    5edf3b686691ebbc0b78111fc187669f_1646377399_7263.jpg
     

    인터뷰는 2월 4일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조우네 마음약국’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환자의 가족들과 상담을 자주 하실 텐데요. 가족의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건넬 말들도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물론 힘들었지만, 더 힘든 가족들이 많지요. 최근에는 자의(自意) 입원만 가능하게 되는 추세라서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입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지역사회가 품을 수 있는 역량이 있으면 좀 나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모든 보살핌과 뒷감당을 가족이 해야 하죠. 앞서 쓰나미가 지나간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남아요. 예를 들어, 조증일 때 돈을 과하게 썼다거나 상식을 넘어서는 일탈로 대인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거나…, 심하면 삶이 초토화되거든요. 그런 걸 가족이 다 감당해야 하는데, 정말 쉽지 않아요. 더군다나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발병되면, 아무리 그 병을 이해하는 사람이더라도 곁에서 오래 함께하기란 무척 어려워요. 정말이지 당해낼 사람이 없어요. 자녀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직업을 비롯한 일상을 모두 접어놓고 오로지 치료에만 매달리는 부모들도 있는데, 저는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주곤 해요.


    -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구명조끼 입을 때 보호자가 먼저 착용하고 아이들을 착용시키는 이유와 비슷해요. 자녀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을 때, 보호자의 삶도 같이 무너져요. 이런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들 먼저 살리려고 자기가 하던 일과 일상을 다 포기하곤 하는데요. 단기간 치료에만 집중해서 병이 낫는다면 다행이지만, 조울증의 경우 완치가 어렵거든요. 당뇨나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해야 할 병이죠. 또 자녀에게도 자율성이라는 게 있는데, 24시간 아이와 붙어있는 게 오히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빠져들기도 해요. 제 경우는 그래서 열심히 유아교육 분야 일에 전념하며 에너지를 얻고, 그 힘으로 다시 자녀를 돌봤던 것 같아요. 물론 모두 저와 같은 상황은 아니니까, 조심스럽죠.


    - 발병이나 악화 원인을 유전이나 양육 방식에서 찾는 경우도 있는데요. 엄마로서 죄책감 같은 것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아이들 돌봄에는 섬세함이 필요하잖아요. 노력하노라고 했지만, 내가 부족해서 애들에게 병이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밖에 없죠. 아쉬움이 늘 남아요. 그러나 사실 죄의식은 빨리 떨쳐버리는 게 좋아요. 미국의 전국정신질환연합회(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ness, NAMI)의 첫 번째 슬로건이 “It’s not your fault”입니다. 정신병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죠. 정신병과 관련한 낙인, 그로 인해 가족이 죄책감을 지니거나 비난당하는 것은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더 가중할 만큼 치명적이에요. 저는 오히려 제 경험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 측면도 있어요. 제가 대학생 때 조울증을 겪다가 나았기 때문에 애들도 그렇게 낫겠구나 싶었거든요.


    - 대학생 때 조울증을 겪은 이야기를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년 시절부터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누적되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확연한 증상은 대학생 때 왔어요. 기분은 끝없이 다운되고 말도 없어지고 6개월을 거의 잠만 자면서 보냈어요. 그때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며 위로를 많이 받기도 했죠. 할머니는 ‘공부 너무 열심히 하다가 병났다’라며, 정성스레 음식을 차려주시고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어요.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될 거야’라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몇 달 지나니까 잠도 줄어들고, 다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교회 새벽기도에도 가서 ‘이게 성령충만이라는 거구나’ 느낄 정도로 상태가 좋았어요. 이제 쭉쭉 나아갈 일만 남았다, 자신감에 차서 복학했는데 글씨가 눈에 안 들어왔어요. 공부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성령충만’이 아니라 ‘조증’이 온 거였어요. 우울증이 지나고 조증 상태에 이른 것을 회복되었다고 착각한 거예요. 시험도 치르지 못해 ‘올 F’를 받았죠. 세 학기 평균 평점이 0.85가 나왔어요. 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가족 모두가 충격에 빠졌는데, 할아버지가 학교 앞에 하숙집을 얻어주시면서 ‘공부 안 해도 좋으니 학교 오가며 바람만 쐐, 책가방 안 들고 다녀도 된다’라고 말씀하셨죠. 정말 그렇게 했어요. 아침에 햇빛 받으며 왔다 갔다 하다가 병이 날아가 버렸어요. 일반화할 수는 없으니까 이런 얘기를 섣불리 하진 못해요. 그렇지만 그때의 규칙적인 삶, 지지해주는 공동체(선교단체), 나를 이해해주는 남자친구(지금의 남편 고직한 선교사)가 큰 힘이 된 것은 분명해요.


    5edf3b686691ebbc0b78111fc187669f_1646377414_6988.jpg
     

    ⓒ복음과상황 정민호

    - 병과 관련해서는 의사나 관련 전문가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편하게 이야기할 때 주로 어떤 조언을 하시나요?


    할아버지가 늘 제게 했던 말이 “놀메 하라우(‘천천히 하라’는 함경북도 방언)”였어요. 강박이나 스트레스를 떨치는 데 큰 도움이 된 말이고, 지금 제게는 좌우명과도 같은 말이죠. 병 때문에 힘들어하는 환자나 가족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곤 해요. 보다 실제적으로는 수면 시간을 잘 잡는 게 중요해요. 약 복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수면인 것 같아요. 수면 균형을 잡아야 운동, 일, 식생활이 규칙적으로 이뤄질 수 있거든요. 삶의 루틴(routine)을 잘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한데, 그 중심이 안정적인 수면이에요. 또 하나는 고립되는 환경을 피하는 게 중요해요. 고립돼 홀로 있을 때 망상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모습이 사회에 노출되었을 때 편견이 생기고, 편견 때문에 다시 고립되는 악순환이죠. 교회나 지역사회가 품어주면서 선순환을 이끌면 좋을 텐데,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네요.


    - 두 자녀를 치료하면서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두 애 모두 조증이 문제였기 때문에 입원할 때도 1인실을 잡아야 했어요. 조증일 때는 과한 행동으로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1인실에 있어야 하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1인실은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서, 한 아이 입원할 때마다 한 달에 500만 원씩 입원비를 냈어요. 남편은 선교사이니까 제가 돈을 벌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32년 동안 일을 멈출 수 없었는지도 몰라요. 하루는 둘째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이런 병에 걸렸는데 돈 없는 사람은 어떻게 치료하느냐”고 묻더라고요. 오로지 가족들 몫이 되는 거예요. 물론 돈이 많다고 해결이 쉬운 건 아니에요. 부유함이 독이 되기도 하죠.


    - 앞서 자녀들이 금방 나을 거로 생각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기대가 무너지면서 더 절망하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은 두 자녀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이렇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두 애 입원한 횟수를 합치면 열일곱 번입니다. 남편은 입원 전후를 합쳐 50회 이상은 지옥을 경험했다고 말해요. 병증이 있는 동안에는 먼 미래를 생각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하루빨리 일상이 가능하게 해달라는 단순한 기도를 반복할 뿐이죠. 정신없이 그때그때 닥쳐오는 상황을 수습하며 버티기에 바빴어요. 대다수 환자 가족들이 그래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평범함을 간절하게 구하게 되죠. 그 시기를 견디고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건강한 교육사업을 하고 있었고,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 지지하는 가족들과 기도해주는 사람들 덕분이었어요.


    - 어려움을 겪는 환자나 가족을 돕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막연하게는, 첫째에 이어 둘째도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뭔가 정신이 번쩍 드는 게 있었어요.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는 일이 없는데,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두 아이 모두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에는 분명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늘 증상이 다시 나타날까 봐 조심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긴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4년 전 큰애 부부가 유튜브를 통해 돌아가기 싫은 조울증을 콘텐츠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랐어요. 그 고통스러운 긴 터널 이야기를 전하며 환자들을 돕겠다고 하니, 그 소박하고 긍휼한 마음에 감동했죠. 물론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죠.(웃음)


    5edf3b686691ebbc0b78111fc187669f_1646377431_9706.jpg
     

    김정희 교육가가 남편과 함께 유튜브 ‘조우네 마음약국’에 출연한 모습. ‘조우네 마음약국’은 조울증을 겪으며 살아온 두 아들과 가족들이 만들어가는 콘텐츠다. (사진: 조우네 마음약국 유튜브 갈무리)

    - 조우네 마음약국’의 인기가 좋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사자들 이야기를 하기 때문 아닐까요? 구독자들이 자기 고통을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1인실에 갇혀(?)있던 이야기, 골방에서 나가기 싫어서 스스로 고립되었던 이야기를 서로 터놓고 나누다 보면 바깥으로 한 발 나올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요. 또 두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이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일단 발병하면 가족도 해체되기 쉬운데, 두 아이는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아 살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며 힘을 얻나 봐요. 조울증인데 왜 애를 셋이나 낳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요. 유전적인 요인을 우려하는 거죠. 100% 유전은 아닌데다가 아이들 세대 때는 더 좋은 약들이 개발되겠죠. 한 번 병에 걸렸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작은 증상들을 기가 막히게 알아봐요. 조기 발견과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얘기죠. 또, 아이 키우면서 루틴한 삶을 살면, 회복력이 더 좋아지죠. 분명 극복하기 어려운 질병이지만, 최대한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방송을 끌어가는 게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최근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022년을 이끌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를 꼽았더라고요. ‘건강 관리가 즐거워진다’ ‘건강을 즐겁게 관리한다’는 의미 등이 담겨있는데요. 앞에 ‘멘탈’(mental)을 추가해서 정신·정서적 건강도 밝은 분위기로 이야기하는 트렌드로 자리 잡혔으면 좋겠어요. 고립되어있던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 연결되면서 긍정적 에너지가 생기고 전달되었던 것처럼요. 개인적으로도 지난 30년 간병 생활을 통틀어 ‘조우네 마음약국’을 해온 최근의 3년이 가장 많이 배우고 느낀 시기네요.


    - 함께 예배드리는 모임도 생겼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유튜브에 좋은 설교나 특강은 넘치는데 크리스천 관점에서 정신질환 이슈를 바르게 이해하고 전하는 말씀은 거의 없죠. 남편이 매주 메시지를 준비하고 15-20명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인격적인 모임을 가져요. 기도도 더 깊게 하게 되고, 교회는 아니나 교회 같은 느낌이 있죠. 물론 교제가 쉽진 않지만,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남편은 이 모임이 교회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좋은 교회에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과도기적 모임이라 여겨요. 일종의 ‘터미널 처치’ 역할을 하는 거죠. 현실적으로 교회가 이들을 품긴 쉽지 않아요. 그러니 이들이 교회를 이해하도록 도와야지요. 그러려면 스스로 강해지고 부요해져야죠. 정부나 교회의 책임을 묻는 것은 그다음 문제이고요.


    5edf3b686691ebbc0b78111fc187669f_1646377452_5227.jpg
     

    약 10년 전 김정희 교육가가 운영하던 유치원에서 부모님들과 대화하는 모습. (사진: TheAddlish 유튜브 갈무리)

    - 30년 넘게 교육가로 살아오셨습니다. 유아교육을 하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신 건가요?


    호주에서는 소수민족을 위한 유아원, 플레이그룹을 운영했어요. 1986년에 한국에 와서도 유치원을 운영했어요. 처음엔 아들과 아들 친구를 포함해 4명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뜰’ ‘봄뜰’ ‘빛뜰’ ‘꼬뜰’ 플레이그룹, 어린이집을 운영했지요. 제 교육철학은 아까 말했던 ‘놀메 하라우’였어요.(웃음) 애들 놀게 해야 하니까 마당이 있거나 100평 넘는 집을 얻어서 운영했어요. 선생님들의 행정 잡무를 최소화하고 주 4일 근무하도록 했어요. 선생님이 즐거워야 애들이 즐겁거든요. 애들하고 잘 놀아주는 게 교육이라고 강조했었죠. 지금은 ‘놀이교육’이라고 해서 보편화되었지만, 20-30년 전만 해도 파격적인 교육이었어요. 특별히 제가 중요하게 여긴 건 부모님들이 참여하는 ‘플레이그룹’이었어요. 그렇게 맺어진 부모와의 관계가 아직 이어지고 있어요. 아둘람 모임에 와서 봉사하는 분도 있고요. 사랑의교회에서 1986년에 처음 유아부 만들 때도 교육전도사로 함께하고, 옥한흠 목사님께 계속 요청해서 사랑부(장애 유아)가 시작되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만 2-3세 유아가 120명이 있었는데 그중 10명 정도의 장애 아동이 있었어요. 이 유아들을 돕는 부서가 필요하다고 교회에 3년 동안 줄곧 요청해 사랑부가 시작되었죠.


    - 유치원이나 교회에서 만나는 부모님들께 자녀의 병을 숨기고 싶진 않으셨나요?


    오히려 함께 소식을 나누고 기도해 주었어요.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을 봐온 분들이라서 남의 일이라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걱정해준 고마운 이들이죠. 남편 쪽의 가족력도 있었기 때문에 조울증에 대한 인식이 저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교회 공동체에 털어놓았을 때도 잘못된 지식으로 조언해주는 분이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셨어요.


    - 가정, 교회 등 공동체 차원에서 환자들을 향한 지지가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인식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아니에요. 죄 때문에도 귀신 들림 때문도 아니에요. 4명 중 1명꼴로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의 정신질환을 겪는다고 하잖아요. 특별히 교회가 정서적·정신적 약자를 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죠. 남편이 쓴 《정품교회》(뉴스앤조이)에도 잘 나와있지만, 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참 중요해요. 제가 상담해보니까, 확실히 착하고 명석하고 민감한 사람들이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으니까 당연한 얘기일 수 있죠. 생물학적 취약성과 스트레스가 합쳐져 100을 넘어서면 발병한다고 볼 때,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큰 거죠. 아주 유명한 ‘탄광의 카나리아’ 이야기를 대입해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유독가스 탐지기가 개발되기 전 19세기 광부들이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라는 새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하잖아요. 카나리아는 적은 양의 일산화탄소와 메탄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광부들은 카나리아가 이상 증세를 보이면 가스중독을 피하고자 즉시 탈출했다고 해요. 저는 정신적·정서적 약자들이 이 시대의 카나리아 같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약함과 민감함을 헤아리는 노력은 곧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녕을 지키는 일인 셈이지요.


    5edf3b686691ebbc0b78111fc187669f_1646377463_0741.jpg
     

    ⓒ복음과상황 정민호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713건 2 페이지
    • RSS
    정신장애인권리포트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698
    파도손
    조회 Hit 1793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1793 0 2023-03-30
    697
    파도손
    조회 Hit 1771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1771 0 2023-03-30
    696
    파도손
    조회 Hit 1858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1858 0 2023-03-30
    695
    파도손
    조회 Hit 1964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1964 0 2023-03-30
    694
    파도손
    조회 Hit 2008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2008 0 2023-03-30
    693
    파도손
    조회 Hit 1998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1998 0 2023-03-30
    692
    파도손
    조회 Hit 1973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1973 0 2023-03-30
    691
    파도손
    조회 Hit 1971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3-30
    파도손 1971 0 2023-03-30
    690
    파도손
    조회 Hit 1978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1-10
    파도손 1978 0 2023-01-10
    689
    파도손
    조회 Hit 2236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1-10
    파도손 2236 0 2023-01-10
    688
    파도손
    조회 Hit 1979    추천 0        작성일 Date 2023-01-10
    파도손 1979 0 2023-01-10
    687
    파도손
    조회 Hit 3419    추천 0        작성일 Date 2022-07-13
    파도손 3419 0 2022-07-13
    686
    파도손
    조회 Hit 2483    추천 0        작성일 Date 2022-07-13
    파도손 2483 0 2022-07-13
    685
    파도손관리자
    조회 Hit 3037    추천 0        작성일 Date 2022-07-11
    파도손관리자 3037 0 2022-07-11
    684
    파도손관리자
    조회 Hit 2604    추천 0        작성일 Date 2022-07-11
    파도손관리자 2604 0 2022-07-11

    SEARCH